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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세계 LNG 확보 대란, 한국 덮친다

유럽·중국이 물량 쓸어가자 국제 투기수요까지 가세
한국 구매가격 하루 40% 급등…中企 비용부담 우려
◆ 도미노 에너지 대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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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국발 구매 증가로 불붙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고공 행진이 결국 아시아를 덮쳤다. 아시아 시장에서 LNG 가격이 하루 만에 40% 넘게 폭등하며 시장에 '패닉 바잉(공포에 따른 공황적 구매)'이 불거졌다. 6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플래츠에 따르면 이날 일본과 한국으로 수입되는 LNG의 11월 선적분 현물 가격이 전일보다 1MMBtu(열량단위)당 42% 급등한 56.3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LNG 가격지표로, 이날 급등세는 S&P글로벌플래츠가 해당 지표를 작성한 이래 최대 상승폭이라고 로이터통신·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케네스 푸 S&P글로벌플래츠 아시아 LNG 가격 책임자는 "유럽 가스 가격 폭등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LNG 가격에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무역업체들이 아시아 공급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입찰가를 높여 베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겨울철 한파에 따른 수요 급증과 유럽 가스 가격의 지속적 상승세를 우려해 최근 아시아 LNG 수입 업자들이 물량 확보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LNG의 최대 수요처는 일본이며, 2위와 3위 역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LNG는 석탄보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에서 꾸준히 산업·전력 부문 연료원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올 들어 유럽연합(EU)이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한층 강화하면서 기존 석탄연료에서 천연가스로 에너지 수요를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국내 산업계도 비정상적인 LNG 가격 급등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에너지 대란의 파장이 원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산업용 연료로 LNG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세계적 탄소중립 목표에 발맞춰 LNG 사용을 계속 늘리는 추세다. LNG 가격 급등이 정부의 전기요금 추가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중소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이윤재 기자 / 이재철 기자 / 김덕식 기자]

유럽發 탄소중립 압박에…친환경 LNG로 수요 한꺼번에 몰려

원유·석탄이어 LNG…들불처럼 번지는 에너지대란

탄소배출권 가격 1년새 2배로
석탄에서 LNG로 급격한 전환

LNG강국 러시아는 내심 즐겨
푸틴 "공급 확대" 발언에
치솟던 가격 안정세 찾기도

한국 발전량 LNG 비중 29%
수급 불안 지속땐 전력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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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인도의 전력난과 유럽 국가들의 천연가스 수요 급증이 겹치면서 천연가스와 원유, 석탄 등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겨울철을 앞두고 가격 급등에 대한 염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은 헝가리 국영 에너지 그룹 MVM의 가스 저장시설에 설치된 압력계 모습. [로이터 = 연합뉴스]
전 세계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원유와 석탄에 이어 천연가스로 옮겨붙으면서 한국 산업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럽과 중국, 인도 등 거대 경제권의 전력난이 현실화된 데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동절기를 앞두고 있어 고삐 풀린 에너지값 상승세가 앞으로 더 악화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시장 불안이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염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6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구매자들의 비정상적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고공 행진을 주목하며 유럽발 에너지 위기가 아시아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시아 주요 LNG 가격 지표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플래츠'의 데이터를 보면 이날 한국·일본향 LNG 가격(JKM·Japan-Korea Marker)이 전날 대비 42% 급등해 1MMBtu(열량 단위)당 56.33달러를 찍었다. 이 지표가 작성된 2009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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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아시아 지역 동절기 수요 증가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21달러였던 것과 비교해 2.7배 가까이 폭등한 수준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JKM 현물 가격의 비정상적 상승 기저에는 유럽의 공격적 탄소 감축 목표 계획부터 전력난에 봉착한 중국의 패닉바잉(공포에 기반한 공황적 구매)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세계 배출권 시장의 중심인 유럽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은 1년 새 2배 넘게 급등하며 기업들의 공포를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종전 40%에서 55%로 크게 강화하면서 화석연료 사용 기업들의 탄소중립 '스트레스'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 시장의 패닉이 석탄에서 가스로의 급격한 전환을 촉발하면서 LNG 가격 급등세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KTB투자증권은 최근 에너지 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으로 석탄에서 가스(coal to gas)로 빠른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가스 가격 상승은 탈(脫)탄소화의 '비용청구서' "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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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로 치솟은 가스 가격 탓에 유럽 내 다수 화학사들은 생산비용 증가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최대 암모니아 생산업체인 SKW 스틱스토프베르케 피에스테리츠의 페트르 친그르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천연가스 가격 수준에서 생산을 계속하는 것은 더 이상 경제적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EU 회원국 사이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응을 두고 내부 분열까지 빚어지는 양상이다. 이날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일부 국가 정상들은 EU가 추진 중인 친환경 정책이 탄소배출권 시장과 천연가스 가격 상승을 유발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시아 LNG 현물가격 급등과 달리 이날 유럽 천연가스 가격 기준인 네덜란드 TTF 거래소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전일 대비 9.6% 하락한 104.9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장 안정화 발언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는 세계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천연가스를 포함해 올해 유럽에 보내는 에너지 자원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러시아는 최근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 부족 사태를 야기한 주범 중 하나로 꼽혀왔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유럽 수출 규모가 올해 초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했으나 겨울을 앞두고 러시아 내 수요가 증가하자 지난달부터 유럽 수출량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의혹이다.

한국전력의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LNG 발전량은 총 14만5966GWh(기가와트시)로 전체 발전량의 26.4%를 차지했다. 여름철 전력 사용량이 급증했던 올해 7월 기준으로는 발전량 1만5644GWh를 기록해 전체 28.9%를 책임졌다. 세계적인 LNG 확보 경쟁이 장기화하면서 수급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전력 공급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정부는 올해 6월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면서 가스공사의 의무 비축량을 기존 7일분에서 9일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90일 이상 사용분을 비축하고 있는 석유와 비교하면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라 비상 상황에 대비한 추가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제관 기자 / 김덕식 기자 /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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